본문 바로가기

미국일기

애비닮은 딸네미


자신과 의욕이 넘치다보니 조금은 교만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빠 눈엔 그 시건방마저도 귀엽고 별로 밉지가 않네요. 오늘도 팔불출 아빠의 은근한 딸자랑 글입니다.   



우리집은 아들이 엄마성품/외형을 많이 닮은 반면 

딸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아빠를 더 닮은 듯....



- 하이, 댇(Dad)

모처럼 그리운 도터daughter가 전화를 했다.

늘 빠쁘신 몸이신데 왠일로 먼저.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얘기 끝에 자기네 대학에 며칠전 달라이라마가 왔었다고 한다. 


-  그래 어떻든? 

-  강연내내 우리학교 베이스볼캡을 삐딱하게 쓰고 계셨어 

-  뭐? 승복에, 스킨헤드에 야구모잘 45도 각도로 

-  응, 근엄거룩할 줄 알았는데 조크도 잘하시고 되게 웃겨.

-  그래 강연듣고 무슨 인스피레이션이라도 좀 받았니?  

-  뭐 별로...전부 이미 내가 다 아는 내용이야. 왜 그 다 뻔한 이야기들 있자나. 불라불라...

-  (속으로) 쯪쯪 녀석 좀 겸손하지 못하고서리...



                    중학교 때 딸



하긴 내가 지금 딸네미 나이때 꼭 저랬었지. 

법서 좀 읽고 종교철학 나부랭이 몇권 탐닉하고 나니 눈에 보이는게 없던 시절. 

하늘아래 스승은 없고 학생들만 보였다. 

지적교만이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던 스무살 초엽.  


역시 핏줄은 못속이나,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유전생물학적으로는 아이들이 부모를 거의 정확히 반반씩 닮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쩐지 우리도터는 애비 쪽을 많이 닮은 듯하다. 건 좀 안닮았으면 하는 것들까지도.   


하지만 괜찮아. 


지금은 한껏 너의 지적포만에 젖어 보렴.  

그러면서 크는 거지 뭐. 한 이삼십년 세파를 겪다보면 자만의 헛바람은 어련히 빠지기 시작할 터인즉. 


- 근데 댇, 달라이라마 영어가 댇보다 더 브로큰broken이야.  

- 뭐? 나보다도? 설마....너 혹시 용돈 떨어진거 아니지?  


물론 그분 베스트셀러들은 전부 출판사에서 다듬거나 대필했단게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영어법문하시는걸 직접 들어본 일은 없는지라... 


- 정말이라니까. 댇 영어는 틱나한 스님 정도는 되자나. 

- 흠, 그럼 나도 좀 다듬어서 이제부터 영어로 설교를? 

- 그럼 덷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기저귀차고 아장아장 걷던 모습이 어제처럼 눈에 선한데, 

양발에 엊어 비행기를 태워주면 좋아서 꺄르르 웃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한데  

어느새 다 커서 이젠 거꾸로 이렇게 비행기도 태워줘가며 아빠를 가지고 노는 우리 도터.  

그리고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는지 달라이라마도 시시하다는 에로건트arrogant 한 우리딸. 


이번 주말은 만사 제치고 

세계적 고승보다도 더  우리 잘난 '도터'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