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출발한지 며칠 안돼 썬이 전화로 SOS를 청했다.
안그래도 벤쿠버 부터 기후가 너무 안 좋아 노심초사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위치추적을 해보니 다행히 우리가 정박 중이던 시애틀 밸뷰에서 차로 한두시간 이내 지점.
모토홈 G보이는 누가 털어가거나 말거나 노변에 대충 던져두고 급히 FJ에 뛰어 올랐다.
만나기로 한 맥도날드 앞에 도착하니, 쟤가 우리 아들 맞어? 잘난 우리 아들은 어디가고 물에 빠진 생쥐가 하나가 서 있다. 깜빡이는 자전거 비상등을 끄는 것도 잊은 채....
짐 줄인다고 레인코트를 안 가져가더니만...
국경수비대 아저씨들과 장난도 치고 사진도 박고 미국땅으로 넘어 들어오는 데까지는 괜찮았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들어오면서 부터 계속 폭우가 쏟아지는 데다 길 마저 잃었다. 설상가상 제대로 잠자리를 찾지 못해 그야말로 길가에 텐트치고 며칠을 노숙자로 지냈다고한다.
난생 처음 엄마 품 떠난 설움을 혹독하게 겪은 모양이다. 떠나던 날 큰소리 뻥뻥치던 기개는 다 어디가고 풀이 잔뜩 죽어 있다. 이거 공연한 일 벌인거 아냐 겁먹은 기색마저 살짝 내비친다.
추워서 파란 입술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그대의 눈시울이 불거진다. 나도 코 끝이 찡해 온다. 아직 어린애 한테 너무 무리한 프로젝을 허락한건가...
초장부터 감기들면 안돼니 일단 모토홈으로 데려와 옷을 말리게 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였다. 하지만 독한 마음으로 낭떠러지에서 새끼를 떨어뜨린 어미 사자가 이 정도로 마음이 흔들릴 수야 없지 않은가. 같이 약해지려는 마음을 모질게 숨기고 잠자리에 드는 아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히 말헸다.
내일 새벽에 북상해 아까 맥도날드 앞까지 태워 다 줄테니 거기서 다시 출발해라.
이튿날 다시 주섬주섬 짐을 꾸린 아들, 인사와 허그를 하고 자전거에 오르는데 그 뒷모습이 첫 날과는 사뭇 다르다. 내색 안하려 노력 중이지만 잔뜩 움추린 마음에 어깨선이 무겁게 휘었다.
질척질척 비가 내리는 시애틀의 음산한 새벽. 그날 안개낀 국도변 속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혹시나 저게 마지막 우리 아들의 뒷 모습이 되는건 아닌가 방정맞은 생각마저 흠칫 들었다. 전쟁터 내보내는 것도 아니고 누가 죽은 것도 아니니 뭐 가슴이 찢어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전내내 폐부가 아리고 퍽퍽해 일이 손에 안잡혔다. 이번 대륙횡단 중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다.
* 다행히 초장에 액땜이 된건지 이후로는 다시 썬이 우리에게 SOS를 청해온 일은 없었다.
* 우리 예상대로 호주, 프랑스 그리고 LA에서 온 라이더들과 바로 합류하면서 신나는 여행이 되었다.
* 지애비 닮아 인덕이 있는 건지...여행 중 어딜가나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문제가 생길때 마다 은인을 만나 많은 고움을 받았다고한다.
* Murphy's law: 폭우로 혼쭐이 난 썬이 방수장비와 레인코트를 한 가방 챙겨 갔는데 이후 완주시까지 날씨가 너무 좋아 한번도 써먹지 못했다고.
*앳띤 소년으로 떠난 아들이 두달 만에 텁수룩한 청년이 되어 돌아 왔다. 여정을 마친 날 저녁 오렌지카운티 얼바인의 한 고깃집 생환축하파티에서 아들이 말했다. "Dad, I feel like I can survive wherever... and deal with whoever...." 예쓰! 강한 아들 프로젝트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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