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앞바다로 삼청교육대 잽혀갔다가
가까스로 생환한 이야깁니다.
한 오륙년 전부터 가끔 들리는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단골손님은 이민짬밥 20-30년 이상된 분들이 대부분. 그곳에 **님 요청으로 써 올린 글입니다.
프롤로그
구들장에 바퀴달고 동가숙서가숙 이동생활 중인 로변철입니다. 그동안 난 왜 우등회원 안시켜주나, 눈팅만으로하자면 창립멤버인데...좀 삐쳐 있었더랬습니다. 오늘 아침에사 승급은 카페에 글을 몇편 올려야 됨을 알고...아침 식전에 몇자 적어 올립니다.
그간의 파란만장한 육지에서의 이동생활담은 다음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지난 며칠 쿠바 앞바다로 삼청교육대 잽혀갔다가 피골상접해 가까스로 생환한 경험담을 좀 올려 보려 합니다.
당초 정보제공서비스 차원에서 '캐리비안 크루즈의 모든 것'-같은 폼나는 제목에 학위논문형식으로 쓰려다가 이 카페 형님들이야 뭐 다 크루즈 몇번 안가보신 분 안계실 것이니...하는 생각에
그냥 붓가는대로 철자문법 개무시 쭈리아빠님 버전에 카윤형님 코믹터치 그리고 빛나리 경주애인님(만큼 야하진 않아도)의 19금도 좀 양념으로 버무려서...
원래 전에 가본 뱃길의 같은 코스를 또 한번 재방송하자고 한 건 이런 거였지요.
1) 마침 방문 직전 유명을 달리하신 피델 카스트로옹 회고도 겸해
2) '떠다니는 도시'라는 얼루어(매혹)호가 쿠바섬을 한바퀴 도는 동안 풀사이드에서 철지난 체게바라나 다시 읽으며 그냥 먹다 자다 깨면 또 먹다...를 반복 배둘레 인격고양이나 좀하고
3) 솔라리움 자쿠지에서 그간 찌든 노숙자의 길바닥 때국물이나 좀 불리고, 간만에 더운물 펑펑 샤워도 원없이 하고 오자....
정도의 소박한 생각이었던 겁니다.
요러다 올려구 간건데....
그러나...지금 생각하니 변철옵하가 참 너무 순진했습니다.
이모저모에서 세계최대, 최고라는 얼루어호의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첫발을 디디는 순간 대낮부터 쿵작쿵작 캬바레 오색네온에 눈알이 아리네~ 하려는 바로 그 때였습니다.
갑판에 오르자말자 남편 삼시세끼 솥뚜껑 운전으로 만사가 귀찮다던 갱년의 아내는 얼루 도망가고
파도따라 넘실대는 어깨춤에 실한 방뎅이를 살살 흔드는 2학년 8반의 새색시 한분이
환갑 낼모레 구부정한 어깨에 방금 되살아난 과거경험으로 잔뜩 겁먹은 5학년 6반 늙은 옵하의 팔쭉지를 옴팡지게 잡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야, 뭔가 이건 아닌데...하는 불길한 예감의 엄습에 때맞춰 뱃고동이 뿌우웅~ 울렸고 어느새 남자(배)는 여자(항구)를 등지는데...
아아, 언감생심 독서와 낮잠은 무슨 얼어 죽을...갈매기의 푸른 꿈은 대서양 파도너머로 산산히 부서져 내리고 말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의 엄습.....난 이제 죽었다....
항구를 떠나자말자 발랄상큼한 청춘으로 무려 쓰리 디케잇스 three decades를 거뜬히 거스르는 카멜레온같은 중년여심&여체의 동반변신이 과연 진화생물학적으로 가능한건지...
이십대 연애시절을 능가하는(...당연한게 갱년기 테스토스테론이 더해졌을 터이므로), 마그마 같은 에너지를 마구마구 분출하는 훈련조교의 성화에 종일 팔쭉지를 끌려 다니며
말로만 젊은 오빠, 알고보면 태평양 양편 생존의 격전장에서 무수히 줘터지다 간신히 한숨 돌리는 중의 쇠약한 노병 로변철....은 출항 첫날부터 매일 18층의 유리난간 계단을 허연눈썹을 휘날리며 하루 두서너차례씩 오르내려야 하는 풀방구리의 운명에 처했던겁니다.
아니 엘리베이터는 엿바꿔먹었냐구요? 그게 아니고 
죽음의 선상훈련
매일 새벽을 여는 지옥의 삼청교육련은 꼭대기 층에 있던 휘트니스크럽에서 시작됐습니다.
꼭 아놀드슈왈츠니거 아들 같이 생긴(액센트마저) 트레이너 청년의 클레스에서 사지꺽기-요가, 다리찢기-스트레치를 배합한 관절고문과 더불어...
이어 18노트로 스쳐가는 대서양 파도를 굽어보며 조깅트랙을 두바퀴 돌고(1 마일)
샤워/자쿠지를 일차로 옥상갑판에서 신속하게 끝낸 후
아침을 때리기 위해 중앙통인 센트랄파크 식당가로 뛰어 내려가야 했습니다.
먹다 자다 말고 또 먹다...잠시 꾸벅이기라도 할라치면 추상같은 훈련조교의 불호령!
뮤지칼 공연 좋은 자리 잡으려면 서둘러야 한다구요!- 소리에 깜짝놀라
밤새 선행학습 밑줄친 프로그램시간표를 들고 허겁지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뮤지칼, 아이스쇼, 코미디쇼, 서커스, 미술품 옥션, 각종 게임쇼장으로 우왕좌왕 뛰어 다니다
점심은 배 꼭대기 윈드재머에서 기본 두접시 흡입. 옥탑 데크의 솔라리움에서 잠시의 오수로 에너지 재충전...이 그나마 해상 아오지 탄광의 고된 하루 중 유일한 브레이크 타임이었습니다.
급류타기, 로프타기, 암벽오르기...는
다행히 연세를 인정받아 열외가 가능했지만...
배삯 본전 뽑으려는 사람들로 늦도록 붐비는 가라오께, 카지노, 나이트크럽를
늦도록 헤매야 했던 쇠잔한 노병은 아 저 인간들은 잠도 없나? 투덜대며
갈수록 달아 오르는 밤의 열기에 노구를 이끌고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팀스프릿 지상훈련
하지만
지금까지의 선상훈련은 곧 이어질 지상에서의 숨막히는 인천상륙작전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습니다
멕시코, 자마이카, 아이티...해변에서 숨가쁘게 전개된 네비실 특수부대훈련....은 UDT스쿠버다이빙, 절벽강하와 번지점프, 젯스키...로 이어지고 코즈멜섬에서는 목숨 건 핏자맨 폭주족으로의 변신도 불사해야 했습니다.
먼 바다보며 달리다 어쩐지 스쿠터가 구름 위에 두둥실 뜬 기분이네...하는 순간
앗 아스팔트가 누룽지 위만 남고 아래 흙덩이 지반이 뭉텅 바다에 쓸려 나간 벼랑길...
아, 그래서 아까 스페니쉬로 뭐라 써있었구나...
하마터면 CNN뉴스에 나올 뻔한 순강이었ㅆ스비다.
실전투입전 선상 훈련 중
종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파김치가 되어
간신히 보트로 생환한 프라이빗 라이언private Ryan... 아닌 귀신잡는 방위출신 로변철,
9층 스테이트룸으로 간신히 기어 올라가면
이건 또 뭔지요.
혼신의 힘으로 넘어야 할 오늘의 마지막 관문이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촛불 어린 한잔의 와인 잔,
내 나이가 어때서 뜨겁게 타오르는 모닥불의 열기...는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했었다는...
그러고나서 서로 마주보며 묻는 말-
주책이야, 우리 넬모레면 손주볼 5학년생 맞아?
바다에 띄우는 수장?
아님 레스토랑 냉장고에 보관됐다가 미국가서 가족인계?
와중에 진짜 그게 궁금했더라는....
하여간 풀사이드에서 독서, 야자수 아래서 낮잠...아닌
북파공작 특공훈련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남들은 가로세로가 비슷한 공이 되서 하선하게 된다는데 말입니다,
우린 허리둘레 인격함양은 커녕 두눈 움푹 들어가고 배가 잘록...을 너머 뱃가죽에 씩스팩
라인마저 (미세하게나마)드러날 지경...의 피폐한 모습으로 마이아미로 귀환했지만 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의 옆지기-옆에 있어도 그리운- 그대가
시종일관 너무나 행복해 했다는거....
일단 하루 세끼 밥차릴 필요 없어서...
그래서 허연 눈썹의 젊은 옵하도 덩달아 흐믓했고
마지막날
하선하기 못내 아쉬워 미적미적대다
칠천명중 꽁찌로 상륙하면서
그대여, 다음 제 3차 삼청교육대는 지중해로 갈깡 북유럽으로 갈깡...?를
벌써부터 거론했을 정도로
알콩달콩, 새콤달콤...했던
닭살돋는 로맨틱한 시간들이었다는 겁니다.
에필로그
한때 디자이너셨던 아주머니가 전신근육이 점점 마비되는 루게릭병에 걸리셨더군요. 겨우 눈깜빡임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식물인간 늙은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남편...
인터넷에서 철지난 그 감동영상을 오늘 아침 우연히 보았습니다.
팔다리 멀쩡한 것만도 고마운데 밥세끼까지 챙겨주는 옆지기를 가진 모든 남편 분들, 특히 아마도 우리 카페의 주류일 것으로 사료되는 삼식이협회 회원님들...함께 반성하시고 옆지기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삽시다. 저 자신, 그대에게 같지 않은 이유로 불평하고 꿍시렁댔던 지난날을 참회하며 이번 훈련 성실히 받고 왔습니다.
아주머님들이 유난히 크루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하루 세끼 밥차릴 걱정이 없어서랍니다. 마나님들 모시고 가끔 선상 유격훈련 한번씩들 다녀 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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