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만날때마다 항상 나에게 부담을 주고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본의 아니게 자꾸 내가 신세를 지고 덕을 입게 되는 그런 사람도 있지요.
제 여동생이 바로 그런 경우 입니다.
언제나 본의 아니게 내 쪽에서 신세를 지고 맙니다. 원래 눈치없이 남이 주는 호의, 공술은 덥썩 잘 받아 먹어도 받은 만큼 물질로 베풀거나 되챙기는 센스는 빤쓰인 로변철. 천성인지 잔정이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하여 나름 한다고 하는데 항상 베푸는데 손이 큰, 동생한테 결과적으로 밀려 버리고 마는 겁니다.
'되'로 주면 여지없이 '말'로 갚ㅅ아 버리니 이건 뭐 당췌....어떤 땐 약간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만나고 나면 항상 뭔가 빚진 듯한 부담을 느끼게 만드니 말입니다.
하다못해 가족 간에 간단히 식사 한번을 하자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야, 내일 우리 집(잠수함)에서 간단히 저녁이나 먹자. 너흰 그냥 빈손으로 와도 돼. 그리고 우린 정말 간단히 스파게티 한접시 또는 카레라이스 한그릇을 덜렁 준비합니다. 헌데 동생네는 약속을 어기고 기어이 문을 발로 차며 들어 옵니다. 양손에 잔뜩 뭔가를 싸들고.
뭐, 그런 식입니다.
오빠 로변철로 인해 미국에 온 동생입니다. 당시 능력있던 제부(my ex brother in law)가 그만 IMF로 실직, 실의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오빠로서 딴에는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동생네를 초청한 겁니다.
그러나 결과는?
결과적으로 오히려 능력많고 성실한 동생으로 인해 사업운영과 확장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입니다. 헌데 오빠로서 제대로 한번 크게 베풀어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저런 잔소리를 자주 늘어 놓은거 말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오빠랑 같이 일한 이민초창기 일년이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말하곤하는 착한 동생입니다.지금은 부동산도 하면서 주로 새로 만난 남편을 도와 건축/인테리어관련 사업을 남가주에서 나름 크게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어느새 흰머리도 슬슬 생기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오빠에겐 아직도 누가 '동생 *희!'하면 짖궂게 놀려도 울면서 졸졸 내 뒤를 따라다니던 예닐곱 아이때 꼬마소녀 모습이 일단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앞으로 남은 여생, 세상에 하나 뿐인 여동생에게 진 마음의 빚을 천천히 갚아 나가려 합니다.
모처럼 동생네 가족을 캠핑장으로 불러 바닷가에서 고기를 구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래도 이건 남는 장사가 아닌 것 같다 (0) | 2015.01.19 |
---|---|
눈길에서 맥 못추는 캘리포니안들 (0) | 2015.01.12 |
어느새 애들 "데리고"에서 애들 "따라서"로 (0) | 2014.12.17 |
버켓리스트 추가 (0) | 2014.12.14 |
잇다른 슬픈소식 (0) | 2014.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