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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기

겨울나기


▣ 지난 9월, 아이들이 제 엄마 생일 선물과 함께 준 이름모를 화초. 한동안 물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파김치 마냥 시들어버렸었지요. 거의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그래도 혹시나 열심히 보살폈는데....아, 오늘 아침, 이렇게 예쁜 꽃송이들이 방긋 웃으며 해피 뉴 이어를 외칩니다. 죽었던 애의 부활이라 더욱 아름답습니다. 


2013년 첫날, 섭씨로 영하 25도를 기록하네요.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것 같습니다.  미국/캐나다  북부내륙이면 다 그렇지만 우리동네 겨울은 참 춥고도 깁니다. 일년에 서너달은 북극에 사는 기분이지요. 폴라베어만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봅니다.   


"다 좋은데 빌어먹을 겨울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싶다"


여기와서 처음 몇년간 로변철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드라이브웨이에 쌓인 눈을 몇시간 삽질로 겨우 다 치웠는데 금방 다시 쌓여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을때. 밤에 모임 끝나고 나오니 차가 얼어붙어 문도 안열리고 윈드쉴드에 덮인 얼음을 스크래퍼로 북북 긁어야 했을때. 여기 오기 전, 우린 길가에 야자수가 늘어선 따뜻한 상하의 바닷가에 살다 왔기에 더욱 불평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었지요. 


서울서 옛날 우리 자랄땐(60-70년대) 겨울이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난방이나 방풍이 제대로 안돼어 있었고 방한의류도 부실했습니다. 로변철 유년기 우리집은 그래도 잘사는 축에 속했음에도 겨울엔 늘 오슬오슬 떨며 살아야 했던 기억입니다. 아름목에 이불덥고 있을때 말고는. 집도 학교도 거리도 너무 추웠습니다.  나이든 한인동포들이 유난히 더 겨울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건 아마도 그런 과거 기억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실제 몸뚱이가 추워서 고생하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미국도 한국도 이젠 어딜가나 난방이 빵빵하게 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바깥 이동은 다 차로 하니 추울 겨를이 별로 없습니다. 차에 탄채로 그라지에 쏙 들어가고 쏙 나오고...일부러 바깥에 나가기 전에는 아예 찬바람 쐴 일이 없는 거지요. 


야외활동도 그렇습니다. 첨단소재의 방한기어, 장비만 적절하게 챙겨 입으면 사실 한겨울인들 무슨 상관인가요?  우리 부부는 겨울에도 동네 한바퀴 속보로 걷기를 계속 합니다. 빙판의 호수와 설원의 트레일도 가끔 갑니다. 닌자마스크를 쓰고 스키복으로 중무장하면 춥긴 커녕 속에선 땀이 납니다.  이 지역 미국노친네들 자주하는 말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옷이 문제지 날씨가 문제가 아니다. There's no such thing as bad weather, only bad clothes.

그리고 겨울은 햇볕도 뜨겁지 않고 벌레나 모기도 달라 붙지 않고 땀도 덜 나고 생각해보면 여름에 비해 야외활동하기 좋은 점도 많습니다. 


결국 모든게 기분문제 아닌가 합니다. 마음먹기 따라선 겨울도 다른 계절 못지않게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단 겁니다. 신은 늘 공평하십니다. 부족한 만큼은 알게 모르게 언제나 다른 것으로 채워 주시지요. 반대로 뭔가 과분한 복을 받으면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그 값을 치루어야 하구요. 그것이 세상의 이치고 날씨문제에도 그건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날이 추워서 짜증나는 분이라면 종이와 펜을 가져 오세요. 그리고 겨울이 좋은 점 열가지를 하나씩 적어봅시다. 자, 이제 앞으로는 기왕이면 나쁜점보다 주로 그 열가지 좋은 점만을 말하고 생각하며 겨울을 이겨 나갑시다.  춥다 춥다 불평하고 움츠러들면 정말 추운 겨울이 됩니다. 아 춥다 대신 아 쿨(상쾌/시원)하다라고 말하세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겨울을 즐깁시다.

마음자세의 작은 변화로 한 순간에 겨울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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