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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기

다시 높아진 은행문턱

동포들간에 흔히 하는 말, 오랜만에 연락오는 친구나 친지는 뭔가 부탁이 있어서다...라는 말이 맞나보다. 지인 P형으로 부터 간만에 연락이 왔는데 급전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한다. 


아니 요즘 세상에 아직도 개인적으로 돈 꾸고 갚고 하는 이들이 있나, 그것도 미국물 꽤나 드신 분이...그리고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국제백수 로변철이 무슨 돈이 있다고....


내가 알기론 상당한 재력도 있고, 절대 경우 없는 분이 아닌데 아무리 잠깐이라도 느닷없이 적지 않은 금액을  빌려 달라니 이 무슨 소리인가...처음엔 의아했다. 그런데 사연을 듣고보니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서울에서 부동산 구입 과정 중인데 담보가 충분해 낙관했던 대출이 거의 은퇴한 상태라 고정수입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 국적이 한국인이 아니라 정부관련이나 제1금융권에선 안되더라는 거였다. 마침 미국에 다른 투자건으로 유동성이  모두 잠겨있는 상태에서 한국에 매입하려는 건물 중도금 기일은 다가오고  그 기일 안에 돈 나올 구멍이 없어 자칫 계약금을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됐음을 뒤늦게 알고 당황하신 모양이다. 


 그러면서 혼잣말 처럼 중얼거린다. 미국에선 차별 안하고 돈만 잘 빌려들 줬는데 내 나라 와서 이렇게 외국인 취급당할 줄이야......


한마디로 외국인은 언제든 먹고 튈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은행들이 돈을 안 빌려 준다는 것이 P형의 푸념이었다. 


전화 끊고 문득 든 생각. 

미국이 요즘 과거 우리가 미국생활 시작할때와 비교해 달라진 것이 수없이 많겠만 특히 두가지가 얼른 생각난다. 


911 테러이후 비행기 여행이 과잉 보안검색으로 너무나 짜증나게 되었다는 것. 전엔 정말 시외버스 타듯 간편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화이낸셜크라이시스 이후 돈빌리는게 무진장 까다로워 졌다는 것.  


요즘 젊은이들은 원래가 그러려니 하는 모양인데 중장년,노인들은 과거 편했던 시절과 비교하게 되니까 공항에서도 은행에서도 더욱 투덜거리게 되는 듯하다.  P형의 경우도 맨 주먹 유학생으로 미국건너와 다양한 여러가지 사업을 해 한때는 상당한 부를 이뤘던 양반이다. 짧은 시간에 기반을 다지고 이후 사업확장을 계속해 나간 그의 성공에 큰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은행대출이었다. 


물론 전에도 일정한 요건과 담보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지금하고 비교하면 정말 수월했다. 신용만 좋고 사업의지만 있으면 거의 아무나 원하는 만큼의 돈을 빌릴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변철도 이주 초기, 영국과 미국에서 아직 영주권도 나오기전 상태였지만 여러차례 상당한 돈을  대출받아 사업도 하고 집/차도 사고... 했던 기억이다. 과거 문턱이 한없이 높았던 한국에서 사업하다 온 터라 단지 신용만으로 외국인에게도 척척 돈을 빌려주는 영국/미국은행들이 그땐 신기했다. 


다른 한인사업자들과 모임에서 선진신용사회란 바로 이런거구나하며 예찬해 마지않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후 한국도 급속도로 모든 면에서 미국사회를 닳아갔고 신용관리나 대출제도도 비슷해지고 집도 모기지로 사고....20-30년전만 해도 거의 없던 일들인데....


하여간 일찍 은퇴후 쉬고 계신 P형이 아마도 과거 은행 문턱 낮던 시절 생각만 하시다가 이런 당황스런 상황이 벌어진게 아닌가 생각된다.